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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해 평생 키운 딸이 전재산 들고 도주…폐지 줍는 할머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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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거센 2월 새벽, 정덕희(가명‧74)씨는 여느 때와 같이 이른 시간부터 폐지를 줍기 위해 움직였다.

대한민국 영주권을 보유한 그에게 매일의 노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경기도 부천의 좁은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정씨에게 폐지 줍기로 얻는 하루 7000~1만원 가량의 수입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소득이었다.

정씨는 10년 전 한국에 정착한 후 간병인으로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자궁암 수술을 받은 후에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한민국 내 재외동포 영주권자는 30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정씨처럼 법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중장년‧노년층 1인 가구 증가율이 35.5%에 달하는 등 사회적 지지 기반이 없는 재외동포 노인들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통계청의 분석이다.

정씨의 고통은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으로 키운 딸이었는데…”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정씨에게는 어린 시절 입양한 딸이 있었다. 한국에도 함께 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난해, 믿었던 딸이 정씨의 전재산을 들고 도주했다. 딸이 어디로 갔는지 정씨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남겨진 것은 딸의 빈자리와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뿐이었다.

정씨는 “한국 시민권을 받아서 제대로 정착하고, 아플 때를 대비해서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것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과 상실감으로 그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게 됐다.

법의 사각지대는 정씨를 더욱 고립되게 했다. 한국에서 살고 싶지만, 시민권이 없어서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정씨는 한국어를 익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시민권을 신청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던 일이 예상치 못한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시민권 취득이 가로막혔다.

정씨는 “특히 추운 날이었다. 교회 앞을 지나가다 밖에 놓인 물건들이 보였다”고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한 건물 밖에 내놓은 물품을 고물로 착각해서 가져왔고, 해당 물건의 주인이 도둑으로 오해해 정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물건 주인과의 대화를 통해 오해가 풀렸지만, 정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이는 시민권 취득 결격사유가 됐다. 정씨는 “정말 억울했다”며 “평생 한국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법적 장애물, 그리고 상실감 속에서 정씨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됐다.

정씨의 상황을 접한 SOS위고 봉사단 설은아 매니저는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설씨는 “처음 방문했을 때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며 “약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SOS위고는 즉시 월세 및 생활비 180만원 지원을 결정했다. 당장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도록 빠르게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생활비 지원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더 나아가 지역 교회와 연계해 식료품과 생필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SOS위고는 정씨에게 정기적인 소득이 생길 수 있도록 지역 교회에서 계단 청소 일을 맡도록 연결했다. 정씨는 “비록 작은 일이지만, 매일 일정한 수입이 생기고 교회 분들과 어울리다 보니 다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지원 이후, 정씨는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이웃들의 따뜻한 관심과 대화는 얼어붙은 정씨의 마음을 녹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씨가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제는 제가 받은 도움을 다시 베풀고 싶다. 누군가를 돕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됐다”며 미소 지었다.

SOS위고 봉사단을 운영하는 이랜드복지재단 관계자는 “정씨의 변화는 놀라웠다”며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하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했다. 앞으로도 이랜드복지재단은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재외동포 노인을 위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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