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엔 성심당·인천엔 민영활어공장" 3대가 지키는 '미스터초밥왕'
작성자 정보
- VVIP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378 조회
- 0 추천
- 목록
본문
1968년 '민영상회'로 문 열어
인천 1호 수산물 유통업체, 연안부두 역사 함께 해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 지방 소멸을 힘 모아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든든한 이웃을 응원합니다.
유명 빵집인 성심당이 대전의 '킬러 콘텐츠'로 자리 잡은 것처럼 이를 노리는 기업이 인천에도 있다.
인천시 중구 인천종합어시장(연안부두어시장) 한켠 14평 남짓한 매장에서 한달 6억 원 가까이 수익을 내는 초밥 가게가 있다. 연안부두어시장에는 500여개의 점포가 있지만, 이민규 대표(62)가 운영하는 이곳 민영활어공장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민영활어공장은 1968년 '민영상회'라는 상호로 시작됐다. 어부인 아버지가 잡아 온 생선을 1대 사장인 어머니 김귀이 씨가 고무대야에 넣고 연안부두에서 팔았던 게 장사의 시작이다. 민영이라는 이름은 이 대표의 어릴 적 이름으로, 당시 자식의 이름을 내걸고 장사를 했던 것이 흔했던 시절 지어졌다.
연안부두가 1970년대 초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면서 지금의 민영활어공장도 함께 문을 열게 됐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이 대표는 부모님의 바람과 다르게 학업보다는 장사에 흥미를 느꼈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어머니의 가게를 도우며 장사를 배우던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장사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가 가게를 맡으면서 차별화된 점은 수산물도매업에서 유통업으로 업종을 바꾼 것이다. 지금은 수산물을 인터넷에서도 주문할 수 있는 시대지만, 당시에는 수산물 유통업체 자체가 없었다. 민영활어공장은 인천의 1호 수산물 유통업체다.
이후 1990년도부터는 즉석 회 판매를 하며 초밥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비스로 주던 것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판매를 시작했다. 초밥을 시장에서 직접 팔기 시작한 것도 이 대표가 최초다. 일식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던 그였지만, 선배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우며 일본 등지에 공부를 하러가기도 했다.
민영활어공장이 항상 잘됐던 것만은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 여느 자영업자처럼 중대한 타격을 맞았다. 당시 파산 직전까지 갔지만 이 대표는 더욱 노력했다. 미국에 유학 가 4년 동안 일식집 150개를 돌며 직원으로 일했고, '이를 한국에서 어떻게 활용할까'를 고민했다.
이 대표는 현재 유튜브 채널 '연안부두의 전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의 그간 살아온 이야기, 맛집 소개 등 다양한 컨텐츠를 다루고 있다. 다른 채널에서 민영활어공장을 다룬 영상은 조회수가 286만회에 달한다.
민영활어공장은 현재 아들인 이한얼 체인사업대표(37)가 이어갈 예정이다. 이민규 대표가 어머니에게 가게를 넘겨받았을 당시 그랬던 것처럼 이한얼 대표도 체인사업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난 후 민영활어공장의 인기가 급격히 늘었고, 현재 40개 체인점을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이북에서 온 아버지, 전라도에서 온 어머니가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인천"이라며 "한평생 인천에서 살아왔고, 이곳 연안부두어시장에 자리를 지킨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사 말고 다른 것을 해볼까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 "아들에 이어 손주가 가게를 이어갔으면 한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는 것처럼 민영활어공장도 인천의 상징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천 1호 수산물 유통업체, 연안부두 역사 함께 해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 지방 소멸을 힘 모아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든든한 이웃을 응원합니다.
유명 빵집인 성심당이 대전의 '킬러 콘텐츠'로 자리 잡은 것처럼 이를 노리는 기업이 인천에도 있다.
인천시 중구 인천종합어시장(연안부두어시장) 한켠 14평 남짓한 매장에서 한달 6억 원 가까이 수익을 내는 초밥 가게가 있다. 연안부두어시장에는 500여개의 점포가 있지만, 이민규 대표(62)가 운영하는 이곳 민영활어공장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민영활어공장은 1968년 '민영상회'라는 상호로 시작됐다. 어부인 아버지가 잡아 온 생선을 1대 사장인 어머니 김귀이 씨가 고무대야에 넣고 연안부두에서 팔았던 게 장사의 시작이다. 민영이라는 이름은 이 대표의 어릴 적 이름으로, 당시 자식의 이름을 내걸고 장사를 했던 것이 흔했던 시절 지어졌다.
연안부두가 1970년대 초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면서 지금의 민영활어공장도 함께 문을 열게 됐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이 대표는 부모님의 바람과 다르게 학업보다는 장사에 흥미를 느꼈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어머니의 가게를 도우며 장사를 배우던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장사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가 가게를 맡으면서 차별화된 점은 수산물도매업에서 유통업으로 업종을 바꾼 것이다. 지금은 수산물을 인터넷에서도 주문할 수 있는 시대지만, 당시에는 수산물 유통업체 자체가 없었다. 민영활어공장은 인천의 1호 수산물 유통업체다.
이후 1990년도부터는 즉석 회 판매를 하며 초밥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비스로 주던 것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판매를 시작했다. 초밥을 시장에서 직접 팔기 시작한 것도 이 대표가 최초다. 일식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던 그였지만, 선배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우며 일본 등지에 공부를 하러가기도 했다.
민영활어공장이 항상 잘됐던 것만은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 여느 자영업자처럼 중대한 타격을 맞았다. 당시 파산 직전까지 갔지만 이 대표는 더욱 노력했다. 미국에 유학 가 4년 동안 일식집 150개를 돌며 직원으로 일했고, '이를 한국에서 어떻게 활용할까'를 고민했다.
이 대표는 현재 유튜브 채널 '연안부두의 전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의 그간 살아온 이야기, 맛집 소개 등 다양한 컨텐츠를 다루고 있다. 다른 채널에서 민영활어공장을 다룬 영상은 조회수가 286만회에 달한다.
민영활어공장은 현재 아들인 이한얼 체인사업대표(37)가 이어갈 예정이다. 이민규 대표가 어머니에게 가게를 넘겨받았을 당시 그랬던 것처럼 이한얼 대표도 체인사업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난 후 민영활어공장의 인기가 급격히 늘었고, 현재 40개 체인점을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이북에서 온 아버지, 전라도에서 온 어머니가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인천"이라며 "한평생 인천에서 살아왔고, 이곳 연안부두어시장에 자리를 지킨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사 말고 다른 것을 해볼까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 "아들에 이어 손주가 가게를 이어갔으면 한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는 것처럼 민영활어공장도 인천의 상징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